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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슴언저리

그 사람.. 글 / 파자. 다정. 설야 조선희

by 파자.다정.설야 2010. 11. 11.

 

.. 그 사람 ..
.. 그 사람 ..

빗방울이 떨어진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늦가을 비가
한 두 방울씩 흐느끼듯 떨어진다.

그녀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 길목을 돌아
비에 젖고 있는 가로등 빛을 흡수하며
만추의 밤을 헤치며 걷는다.

까만 밤이 무섭도록 흘러내린다.

간혹 세게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낙엽은 갈 곳을 잃고
서로가 겪어야할 이별의 아쉬움 때문에
더욱 몸부림친다.

비가 내린다.

한참을 걸어온 그녀의 온 몸도
내리는 비로 찐득거리게 젖어있다.

그녀는 마주쳐 다가서는 돌담길로 접어든다.

한 여름을 견디느라 지쳐진,
그래서 아직도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담 모퉁이의 빛 바랜 담쟁이가
그 빈 줄기를 빗속에 애처로이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성인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

그리고 왜 이다지도 고달프고 착찹한가?

인생관을 헤아릴 만큼 여유로운 자신이 아닌,
그리고 이미 남이 된지 오랜 그 사람 때문에
지쳐버린 세월에 연연할 여린 마음이 아닌데,
그사람이 겪고 있는 고난의 길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거쳐야할 마지막 길인데도
왜 이다지도 평범하게 넘어가질 않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가?

그녀는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도시의 밤을 바라본다.

멀리 뱃고동 소리가 비에 젖어 어설프게 들려온다.

수많은 불빛들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한 낮을 버티어온 소음들이
아직도 희부연 안개비 속에서 합창한다.

그녀는 하늘을 향한다.

검은 먹장구름이 한껏 비를 뿌리지 못해
잔뜩 울먹거리고 있다.

허공을 맴돌다 못 다진 낙엽이
한 잎 두 잎 갈 길을 잃고 헤맨다.

그녀는 뒤돌아 열리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조금 전보다 더욱 세게 바람이 분다.

그녀의 머리결은
이미 물이 흐르고 더불어 부는 바람따라
차디찬 그녀의 두 뺨을 향해 때리고 있다.

잿빛깔의 폭 넓은 스커트도 빗물을 흡수하여
무게만큼 육중한 모습으로
이유없이 갈피를 잡지 못하며
함께 방황하듯 출렁인다.

주위엔 인적이 끊긴지 오래다.
앙상한 가로수가 쓸쓸하게 줄을 짖고 있는 길로 접어드니
외롭도록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가끔씩 섞여 있는 소나무들이 검은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다가왔다 저만치로 사라진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 바람에
기어코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녀는 웅장한 몸체로 서 있는
노송 밑으로 움추리며 자리한다.

나뭇가지사이로
제법 커다란 빗방울이 투투둑 소리내어 떨어진다.

그녀는 어깨에
축축하게 걸쳐진 핸드백을 열고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 뒤돌아 선다.

아까보다 아득히 더 멀리로 도시의 밤이
빗속에 범벅이 되어 엉켜든다.

저쯤 마주한 수은등에 반사되어
번득거리는
노송 밑 작은 바위 돌 앞에 선다.

그녀는 돌 위로 젖은 몸을 얹는다.

순식간에
차디찬 한기가 온 몸을 엄습한다.

함께 젖어버린 핸드백을
두 무릎 위에 올리고
양팔을 모아 감싼다.

눈을 감는다.

결국 발갛게 눈물에 감싸인
딸아이의 눈망울이 다시금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허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애쓴다.

굵은 빗방울이
그녀를 향해 마구 떨어진다.

그녀는 딸아이의 두 눈에
늪처럼 고여 있는 눈물같은 비를 맞고 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울컥울컥 목이 메어 오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울먹거리며
그녀를 괴롭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친다.
맥없이, 한없이, 끝간데가 없을 것 처럼
뜨거운 것이 목 가득히 깊은 곳에서
멍글거리게 쏟아질 것 같다.

멀리 아래에서
더욱 구슬프게 뱃고동 소리가 밀려밀려 들어온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쥐고 있던
손수건을 펼친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다.

얼굴을 감싼다.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는다.

『 주님! 제 모습이 이렇듯 초라하나이다.
어느 날 그 사람은
남의 일인 것처럼 남이 되었습니다.

그 후 가슴 공터 어느 곳에도
그 사람은 자리할 수 없다고 모질게 자부하며
세상을 헤쳐왔나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고통으로 절망에 허덕인다 하나이다.

딸의 젖은 눈동자에서
그 사람을 위한 아주 많은 것을 제게 대변할 만큼
그 사람이 딸에게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몰아쳤을 때
어거지로 위로하고,
막무가내로 기원해야 했으니
사는데도 너무나 숨이 가빴습니다.

그렇게 걸어 왔는데
이제 왜 덩달아
이다지도 못나게 괴로워야 하는 것입니까?

도와주소서! 』

세찬 바람이 힘겹게 몰아친다.

줄기찬
빗줄기가 아프도록 퍼붓는다.

비바람에
쫏기다 짚시가 된 한 잎 낙엽이
구겨진 채로
슬피 그녀를 향해 구른다. 떨어진다.

이별한 남편이 폐암 선고를 받고 딸과 함께 괴로워 하며..

 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