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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골짜기

아! 우리 어머니 / 박승희

by 파자.다정.설야 2010. 9. 7.
 

.. 아! 우리 어머니 ..
.. 아! 우리 어머니 ..

글 / 박승희

이른 새벽녘 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막내 여동생의 다급한 목소리다.

“오빠 엄마가 119 구급차에 실려 가셨어.
지금 병원 응급실이야.”

“뭐라고?
응급실이라고 내 바로 가마.”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어젯밤 그 추운 날
어머니를 시청 앞 정당행사에
모시지 않았어야 했다.

그 죄책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뼈 속까지 살을 에이 는 추위 속에
떨고 계셨던 어머니가
인천보다 서울 강남이 가깝다고
막내딸 집으로 가시겠다기에

매제가 모시고 갔는데
쉴 틈도 없이
막내 여 동생네 집 설거지를 하시다가
주방싱크대에 머리를 부딪친 후
넘어지시면서
갈비뼈와 등뼈가
골절되시는 중상을 입으시고
병원에 도착 하셨다는 것이다.

다음날 서둘러 인천집 근처 종합병원인
나은 병원으로 후송시킨 후 입원시켜 드렸다.

아픔의 고통 속에
신경줄기 마디마디가 다 끊겨 있어
그 아픔의 고통이 더 할진데
어머니는 전혀 내색도 안하신다.

수술 후 두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하고
일 년 동안은 노령으로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 결과다.

한 평생을 험난한 고생 속에
소금장사, 과일행상, 떡 장사, 옷장사로
분주히 살아오신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목이 메 이고
죄책감이 허 우적거릴 뿐이다.

평소 어머니는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도
자식들을 위해 주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겨 본다.

우리 형제들은 하루하루의 순간에도
일상에서 지금껏 보와 왔기에
가슴이 메워지는 듯하다.

바로 며칠 전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규모에
어머님의 용돈이며 보약을 도맡아한
둘째 여동생 정우 어멈이
갑상선 암이라는
청천 병력 같은 소식을 듣고
정신이 멍하기도 했었는데
수술대기중에 있는 자식 걱정에
당신의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신 것을
난 병실에 누워 처음 발견 했다.

어머니의 핸드폰이 울린다.

“정우 어멈 전화냐?”
어머니는 족집게처럼 알아 맞추신다.

“엄마! 저예요.”
“응 그래 수술은 잘 끝났구?
“네.” .
“알았어. 내가 퇴원하면 갈게. 에그 불쌍한 것 쯧쯧”

병원비를 걱정 말라고 딸은 당부를 한다.
어머니 앞으로
실버보험을 들었으니 안심하라 하신다.

둘째 여동생 정우 어멈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어릴 적자랄 때부터 몸이 심약했었다.
워낙 허약체질이라
가끔 배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아파, 아파 할 때마다
우리형제들은 꾀병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었기에
병원 문턱조차 가보지 못한 채
성년이 되었던 것이다.

‘정우 어멈아! 미안하다.
사십이 흐른 지금 오빠는 용서를 구한다.’

그 후로 심장이 뛴다면
조심조심 살아 왔기에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을 삭이셨을까?

딸을 돌봐야한다는 모성애 때문인지
어머니의 병세는
빠르게 회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퇴원하자마자
서울 쌍문동 딸네 집에서
원자력 병원으로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분주히 다니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어머님의 기도 속에
정우어멈도 퇴원을 하게 되어
모처럼 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봄소식은
꽃으로 우리 집 주위를 장식한다.

복숭아나무 세 그루엔
꽃이 만발하다.

밭 가운데의 모과나무에도
온통 꽃으로 장식한다.

어머니는 서울 딸네 집에 갔다 오시면
늘 집 앞 텃밭에 계셨다.

상추며 쑥갓이며 온갖 채소를 심으신다.

철칙이 하나 있다.

절대 농약을 거부 한 채
유기농법으로 가꾸는
상추나 배추, 파, 토마토는 잘도 자란다.

그것들은 자식들에게
이웃들에게 고루 배분된다.

150평 남짓한 텃밭엔
봄배추, 가지, 오이, 호박이
튼 실히 자라고 있다.

어머님이 넉넉한 인심이 배여 있는 것이다.

특히 암수술이후
싱싱한 채소를 정성껏 다듬어
둘째딸내로 택배로 보낸다.

“어머니가 보내신 택배가
1박2일 여행을 마치고 도착했다.

서둘러 박스를 열어보니
당신의 투박한 손으로 꾹꾹 눌러 담은 채소가
자식 향한 어머니 마음처럼 부풀어 오른다.

더운 공기에 시든 푸성귀를
다듬어 목욕시키니
당신의 푸른 미소로 살아난다.

저녁상에 상추, 쑥갓을 담아내니
당신의 잊고 살아온 세월이 떠오른다.

인고의 세월 견뎌내며
흙처럼 사신 당신
둥지 떠나 암 수술한 자식을 위해
산수傘壽에도 여전하신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넘쳐난다.

상추의 한 잎 입에 넣으니
밭 메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 가까이 계시나 언제나 그리운 당신
야채처럼 싱싱한 세월을
택배로 보내드리고 싶다”

택배를 소재로
어머니의 정성을 시로 표현한 동생의 글이다.

‘택배로 부쳐온 어머니의 정성이나
어머니의 젊음을 택배로
되돌려 보내고 싶다는
따님의 마음을 가장 깊고 심오한 진리다’라고 하며
문단에 등단된 시를 소개한 것이다.

45년 전 전
세계적인 매스컴을 탓 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964년 동경 올림픽경기장을 확장하기 위해
3년밖에 안 되는 인근 어린이집을 헐게 되었다.

지붕을 벗겨내다가
지붕한쪽 벽 모서리에
꼬리부근이 못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주인을 불러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더니
집을 짓던 3년전에 박은 것이
틀림없다는 대답이었다.

못에 몸이 밖인채 죽지 않고
3년 동안이나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은 이 신기한 사실의 까닭을 알기 위하여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그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변해버린 환경에 두리번거리면서
못에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몇 번씩이나
못에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를
3년이란 긴 세월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동경대학 동물학교수가
두 도마뱀을 잡아다가
그 과정을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먹이를 날라준 도마뱀은
바로 못에 박힌 도마뱀의 어미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머니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담은 예화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끝없는 희생과 봉사와 헌신의 길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어머니의
그 진한 감동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 기쁨도 슬픔도 많으련만
가슴속으로 조용히 삭이시며
늘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 사남매를 키워주신
나의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어머니. 아! 나의 어머니!’

박승희
수필가, 인천광역시 시의원
 아! 우리 어머니 / 박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