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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골짜기

지하실의 서러움이여.. 글 / 박승희

by 파자.다정.설야 2010. 9. 4.


 

♣ 지하실의 서러움이여 ♣ 
.. 박승희 (인천시의원) ..

비가 오면 한숨부터 쉬게 된 건
사무실을 지하로 옮기고 난 후 얼마 후부터였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나들이를 하다
지하사무실로 들어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이 필요 없으니 전기료도 절감이 되고
지하실의 적막함이 글쓰기에도 적격이었다.

혼자 있는 여유 공간이라
남을 의식하지 않아서 웃옷을 훌훌 던져버리고 나면
아파트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파에 누워서 책을 보다가
한밤중 느닷없이 쏟아지는 큰 비가 밖에서 오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는 줄도 몰랐다.
이를테면
천둥이나 바닥 따위를 동반한 폭우가 몰아쳐도
지하실은 끄떡없으니 말이다.

출입구만 뻐끔히 열어놓은 지하실 밖에서
숲속의 작은 건물 처마 밑으로 듣는 빗방울소리가
바깥세상의 걱정도 떨쳐버리는 듯 낭만이려니 생각했었다.

얼마 후 동네어귀를 지날 때다.

떡시루 모양의 항아리 속에
작은 연꽃처럼 마지니타가
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사무실에 갖다놓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수돗물을 주지 말고
보름에 한 번 꼭 빗물로 채우라고
꽃집 주인 아름엄마의 신신당부다.

“운치 있게 예쁘게 꽃이 필거예요.”

“그래요, 고마워요.“

돈을 지불하고 지하실 입구에 배치해놓았다.
열흘 쯤 지날 무렵 친구들이 놀러왔다.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잖아, 햇빛을 안보니 썩는거라구”
불길한 징조가 엄습해온다.

한달이 지날 무렵 그러니까 8월초였다.

계속 굵은 빗줄기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자정이 지날 무렵이었다.

지하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심상치 않았다.
본격 장마라더니
금방 지하실 한 켠 집수대에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급히 수중모터를 작동하고
가습기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오밤중 한바탕 소동을 피우기에 바빴다.

내가 위치한 건물은 원적산 끝자락의 건물구조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지하로 스며들어
방수처리가 무색할 정도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 아닌가.

새로 깔아놓은 장판 밑으로
빗물이 출렁출렁 잔뜩 배어있었다.

밤새워 물을 떠내고서야 새벽녘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새벽기도 준비 중에 나를 맞이한다.

“웬 새벽에?”
“사무실에 물이 차서 수습하느라 이제 온거야”
“쯧, 당신이 지하사무실 고집부리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네”
“그러게 말이야 허참”
그 이후로 비가 오면
한숨부터 쉬게 된 건 지하실 사무실 때문이었다.

남들이 말렸는데도 내 고집을 부려
사서 걱정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가 멈춘 후 사무실에 들어서면
매캐한 곰팡이 균으로 가득한 냄새가 역겹기도 했다.

책갈피에도 액자 뒤에도
곰팡이 균이 허옇게 배여 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섬뜩하기만 하다.
마른 수건으로 곰팡이를 닦고
선풍기를 4대를 갖다놓고 사방에서 틀어놓는다.

한겨울에야 사용할 줄 알았던 전기곤로 까지 동원해본다.

지하실에서 오래 있지 말라고
어머님은 신신당부를 하신다.

“몸에 안 좋으니
아범 사무실을 지상으로 옮겨야 해.
짐을 정리해서라도.
작은 사무실로 이사를 해야 할 텐데 돈이 문제지“ 하신다.

“여름 지나면 괜찮을거예요“라며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지하실 생활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정말 몰랐다.

9월초 태풍 콘파스가 휩쓸 때
밤새워 사무실의 물을 퍼내야했다.

이젠 지쳤다는 자괴감뿐이었다.

지하실에서 5년 살다가 이사를 가신
독거노인으로 홀로 사시는 이모님이 생각났다.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지,
집에 냄새도 나고 곰팡이가 배어있고
벽지도 밑에서부터 부식이 심했어.“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온 종일
도봉구 쌍문동 노인복지회관이며
굴다리를 찾아 다니셨다하신다.

2층으로 이사 가시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었다.

이사 간 날 굴다리 밑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고 했다.

너무 기분이 좋으셔 동네 노인 분들께
티코 아이스크림을 돌리셨다고 하셨다.

이모님이 이사를 가시던 날,
또 한 분의
독거노인이 이사 와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혼자 살다보니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았고
시신이 부패되어 악취가 진동하던 차에
이웃에 살던 자식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 많은 세상을 뒤로한 채
홀로 쓸쓸히 숨져간 망자의 넋을 기린다.

아, 그렇구나.

내가 지하실 생활에서 터득한 것은
주거환경이 얼마나 중요함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하실 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한 때 다세대 연립주택이니 하며
마구잡이로 지어진 주택 구조 속에
얼마나 많은 지하 세대가 지어졌단 말인가.

도시의 과밀현상 속에
지친 몸을 기댈만한 곳이 가족이 있는 집이건만

지하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심경을 이제야 이해를 하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앞선다.

하루의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겐
인간적인 따뜻한 온도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습기와 곰팡이 균이 넘실대는 지하방에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살다보면
얼마나 답답할까.

때로는 가난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오랜 시간이 있을지언데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 마음 놓고 이해하고,
그들의 지하 삶을 우리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얼마나 공유를 했던가.

우리들 이웃의 건강상태를 걱정하고
처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건강한 주거환경이 개선되어지기를 소망한다.

사람은 자기 환경을 몸소 개선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돈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주어진 환경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일반 동물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도와줘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자신 지하실 생활
백일동안 얻은 소중한 체험이었기에.....

 ..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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