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슴언저리

어머니

by 파자.다정.설야 2008. 12. 23.
- 어머니 -

울적 할 때에 가끔씩 찾아오는 조용한 길목이다.

종일을 먹구름 떠돌던 하늘 아래로 이제 어두움이 내리고 있다.

금새 비가 올 것만 같다. 아무래도 아까의 일이 그냥 넘겨지지가 않는다.

『어짜피 우리가 직장이라도 있을 때 가시면 자식 생각하는거야. 』 『.....서운하지는 않지 뭐... 그런데 사람 명줄이란게 어디.. 』 황혼의 언덕에서 팔순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형편이 비슷한 친구의 말에 나는 때를 만난 듯 받아치기에 바빴었다.

분명 많은 날이 흐르면서 후회가 따를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번 와서 떠난다는 것이 두번 일수 없는 인간사이기에 이와 흡사한 이야기가 거론되는 자리에서 쉽게 침묵하지 못하고 어울려 내뱉어버리던 말들이다.

어떻튼 사람의 일생을 한세기로 고집해도 이제 어머니의 여생은 내리막일 진대

그동안 엎 뒤치며 살아오면서 실상 손 한번을 후하게 잡아드린 기억이 없다.

더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 제대로 된 버선 한 켤레 신겨드리지 못했음에도 얼버무려 사는 것이 감사하다며 이면의 탈을 쓰고 있는 나를 위하여 무릎 꿇어 기원하시고 계신 어머니가 아닌가.

흔히 세상사 한치 앞을 알수 없다라는 현실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그러나 누구라도 가야 할 생의 종착역을 앞에 놓은 자식이라면

윤달끼인 해에 노부모를 위해 준비하면 이래 저래 좋다라는 것까지는 아니라 해도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인간의 생각으로 저울질하며 어머니의 명을 내 형편에 맞쳐주길 거론해서야 쓰겠는가 말이다.

별탈없이 그만하신것에 감사해야 할 자식으로서 내 삶의 고리에 꿰달아 하기 좋다하여 담을수 없는 말을 남발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또한 더 나이 들면 늙어갈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어머니의 나이가 될수도 있겠는데 자식으로서

앞으로 어머님이 적당히 행하여 주셨으면하고 생각했던 그 길은 어머니 곱던시절 남편의 어깨로 걸머멘 지게에 자식을 얹고 피난길 걸음에도 내일이 있던 그런 행로가 아니 잖은가.

베두건 휘두르며 뛰놀던 코흘리개 아들 두고 먼저간 남편묘소에 넉 두리 하시러 가시던 길 또한 아니잖은가.

자식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새벽이슬에 목을 추기시며 이삭줍는 저녘이 있어 행복하다고 벌이나가시던 그길도 아니 잖은가.

막내 아들 면회하면서 입대날 쥐어 주었던 몇백원 땀에 절도록 간직했다 건네 드리던

효자아들에 가슴에이시며 새벽기도 가시던 길이 아니 잖은가.

그래도 공부시켰으니 힘이되리라 하던 딸 소박맞아 하늘에 매달린 구름같은 한숨 쏟으며 마중가야 하셨던 길은 더욱 아니 잖은가.

이렇듯 인간의 생은 만물의 영장이면서 황홀한 낙엽으로 치장하며 겨울을 재촉하는 자연의 섭리처럼 그렇게 다시 돌아 오지 못하는 길이기에

이제 어머니앞에 놓일 미래는 언급하거나 장담하여서도 아니되는 진실로 귀중하게 남은 신실한 날인 것을..

청상에 홀로되어 넘어질 듯 가누시며 걸어온 수만 리의 흔적이 백발의 머리카락 사이로 펼쳐진다.

나의 눈 앞을 가로 막는다. 아! 나는 땅으로 주저앉고 만다.

맞은 편으로부터 세차게 바람이 몰아친다.

그 바람에 하늘을 맴돌며 울먹거리던 먹장구름에 쌓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를 키워오신 어머니의 눈물같은 비가.. 눈물같은 비가 나를 향해 멍울져 떨어진다.




- 일간지게재작 -


 

  어찌이리도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