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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슴언저리

축복이란 것이 따로 있나

by 파자.다정.설야 2008. 12. 23.
.. 축복이란 것이 따로 있나...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달리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꽤나 멋 부리기를 좋아했다.
전란 후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의 치장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 고교시절에는 잘사는 친구언니가 신던 나일론 스타킹을 어렵게 구하여 갖가지 물을 드려 도시락 가방과 머리등에 매달아 맵시를 내며 다녔고
큰마음 먹고 구입하신 엄마의 싸구려 레인코트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고 싶어 비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이어 상급 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남대문 구호물자 시장을 뒤지는 것이 낙이었고 거기서 싸게 구입한 것들을 줄이고 늘이고 떼어내고 붙여서 쌜 쪽이며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생활이주는 환경 때문에 조금 침체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어 팔자가 나대며 벌어야 하는 인생으로 탈바꿈되면서 우선 활동하려면 몸에 손을 대야 했으니 그동안 잠잠했던 나의 멋 내기에 발동이 걸렸던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 할 때에는 원생들에게 들어오는 중고 위문품 중에서 추리다 남은 성년 여성의 것들을 손쉽게 입고 쓸 수 있었으며 춘하추동 이것저것 얻어 입다보니 나름대로 가슴이 뿌듯했고 돈주고 어벙하게 시장에서 사봤자 신통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낳았던 것이다.
여유롭지 못한 형편에 마음껏 치장 할 수 있는 축복의 고리가 연계되어 현재의 직장으로 옮기면서 여기저기에 버려진 중고의류등을 모아 진열해 놓고
천원. 이천원씩에 팔아 얻은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상설알뜰장을 권장하게 되었으니 복중의 복 아닌가.
물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니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가 있겠지마는 악세사리 신발 가방등 없는 것이 없으니 주인을 잘 만나 어울리도록 연출되면 천하에 둘도 없는 일품으로 둔갑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주님께 감사하여야 할 것인지. 계산해 보면 거의 이십 년을 제대로 된 옷 한 벌 안사 입고 살아온 셈이라면
그만큼 남아 있어야 할 옷값 등은 어디엔들 없지만 돈복은 애당초 타고나야 한다라고 마음 편히 갖고 원하는 옷은 다 입고 걸치고 둘러봤으니 이제 그렇게 길들여진 내게 있어 생돈 주고 사서 몸단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싫을 정도가 된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쓰던 물건인 줄 알겠느냐하는 부분에 벽을 허물고 모르면 약이라는 점만 들썩거리며 쉽게 살자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실상 사흘이 멀다하고 오만 잡가지 것으로 번질나게 치장해대는 나에게 더러의 사람들은 그 월급에 웬일인가라고 했을 것이고
역시 나 같아도 남이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오늘도 가을 초에 골라 손질해 두었던 비로드신발과
유난히 너울거리는 꽃무늬 쟈켓에 360도 롱 후레아 스커트를
장딴지까지 내려뜨리고
가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소의 손길로 손수 만든 꽃을 가슴에 달아야 겠다.
1997년 일간지 게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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