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평화에 잠드소서! ..
십일월 이일. 경기도 용인 골 .. 참사랑 묘역..
카토릭 의과대학 의학도들이 연주하는
" 카치니의 아베마리아"가 퍼져 흐른다.
애절하게 피어오르는 바이올린의 전율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가을하늘에서 맴돌다 군집해 있는 시신 기증자 오백여 유족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파고든다.
은총과 사랑으로 마련되어진 위령탑.
" 고인께서 숭고한 정신으로 기증하신 시신은
우리 의학발전에 .....! 가장 아름다운 .... 빛과 평화에 잠드소서!
하늘, 땅, 바람, 나무 ...
어느 것 하나 쓸쓸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푸르도록 청아한 창공은 오늘따라 도리어 외로움을 더하게 한다.
어인 일인가?
낙엽 빛 땅 사이로 스미는 고독까지 덩달아 허무함을 자아내게 하며,
형체를 알 수 없는 바람마져 싸늘하니 년 전 한 거플의 슬픔을 걷어낸
유족들의 서글픔에 채찍을 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과 얽히고 설킨 사람들 사이를 축축하게 그 무언가가 못 견디게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일년 내지는 3년 전 의학자료로 쓰여졌던 일 백 여구의 시신이
흙으로 떠나는 날이며. 그는 일년 5개월 4일 만인 것이다.
나는 그가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세 딸과 함께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 끼어 있다.
안타깝게도 아비와 어미의
풀먹여 다듬질하지 못한 인내와 이해의 벽에서 뿜어대던 오염으로
이혼이란 불협화음의 세월이 초래되었고
밀물처럼 닥쳐오던 어려운 생활 가운데에서도
또한 내가 어미로서 당당할 수 있도록 힘든 형편을 감수하며
나의 부족한 허물까지도 감수하려 애쓰면서 함께 자라온 딸들...
아니가진 것을 탓해 본적이 없고
마치 “옥잠화”의 함초롬한 향기를 연상하게 하는
첫째 딸의 눈가에 홍수처럼 고이는 눈물..
처지를 알고 언니의 옷을 매만져 동생을 입혀주었던
그러나 어디인가에 예술의 감각을 이어 온 둘째 딸의 가슴으로부터
넘쳐 오르는 흐느낌...
네 살 되던 해부터 벌어야 하기에 밖에서 잠그고 나간 방안에서
홀로 집을 지키며 내가 들어온 후에야 밥알을 입에 물던
안타깝도록 소중한 막내딸의 가냘프고 애절한 마음 ...
아비와 헤어져 살면서도 원망을 모르며 곱게 성장하여 주었고,
이루지 못한 가정의 소중함을 알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어온 아비가
일생에 늦은 녘 폐암의 병마와 싸움에 이길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던 딸들 ....
그 사람은 가족의 사랑을 받고 갔다.
이제 이토록 귀중한 사람들 곁을 그는 아주 떠나가는 것이다.
오십 육 년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강산이 다섯 번은 더 변해야 하는 세월 ....... !
약해질 대로 연 약해진 황혼의 언덕에서
그는 자신의 죄 값이란 지극한 의지로 자신을 기증했던 것이다.
나는 하늘을 향한다.
시간이 아닌 후에 이해는 까닭이 없다.
때가 지난 후의 후회 또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이제 그 무엇을 위하고 탓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저 멀리 하늘가에 눈길을 뭍는다.
늦가을의 하늘은 역시 많은 것을 수용하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한 가닥 돌개바람이
맞은 편으로 부터 불어온다.
빛과 평화를 기원하는 아베마리아가 마지막 떠나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계속 흐르고 있다.
가신 님들의 은총과 명복을 기리는 미사의 성스러움이 천지에 가득하다.
아까부터 만추의 하늘에서 길을 잃고 흩어지던 바람에
쫏기다 짚시가 된 한 잎 낙엽이 떨어진다.
두 잎새 낙엽도 떨어진다.
떨어진다.
2000년 11월 2일 작 (일간지게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