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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슴언저리

어찌 애타다 버릴수 있으리오

by 파자.다정.설야 2008. 9. 23.

어느 덧 나도 황혼의 언덕을 바라본다.
하기야 전란의 어려운 시대를 등에 지고 살아오신 어머니께서 어느 새 구순을 바라보시니 인생을 눈 깜짝 할 사이라 하더라도 적지 않은 날이 흐른 것이리라.
흔히 “안개와 같고 아침에 피어지는 풀잎 같으며 눈물과 한숨의 세월이었다” 라 더러 우리네 인생을 표현하곤 한다.
실상 멋모르고 걸어오긴 했으나 돌이켜 보면 내게 주어졌던 세상은 바로 한치 앞을 알 수 없었으며
아주 작은 계획도 보람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찾지 못 하므로서
바닥이 드러나도록 몰리던 자존심에 덮개마져 씌우며 살았어도
결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정작 손 벌려 호소해 봐도 쉬운 것이 없었고
거져 갈 수 있었을 것만 같던 길 또한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잘 입던 못 먹던 제대로 이정표 하나 찾지 못하며
거쳐 온 삶이었다 손치더라도 역시 체험처럼 엮어놓은 생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기에 이 또한 소중할 수밖에 없어서 인가.
내게도 때론 버리고 싶으리만치 서러운 과거의 모습들이 이미 반세기가 넘도록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로 남아 화석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뒤돌아보면 내 어린 자식이 사경을 헤메이고 하늘같던 제 2의 인생마져 빈틈없이 무너질 때에도
이미 잊혀진 줄 알았던 피난시절의 기억은 합해진 물처럼 먼저 앞질러 다가오곤 했다.
견딜 수 없도록 목메어오는 일들이 비록 이뿐일까 마는 이제 이모든 것들은 달리 다져놓았던 길처럼 도리어 내 생의 연민으로 자리하며 다가오는데
그러나 다시 가라면 눈물이 강을 이룰 사연들 어찌 다 옮길 수 있으리오.
영영 되 돌아 갈수 없으리라 꿈조차 꾸어보지 않으셨을 고향 땅을 뒤로하며
머리에는 비행기 소리 쏟아지던 밤하늘을 이고 얼어붙은 강바닥으로 늘어선 피난의 행렬 속으로 쫓겨나듯 떠나오신 부모님에겐 지게 위로 얹어진 나와 동생이 전부였다.
눈 비비며 둘러봐도 기댈 언덕은 커녕 졸라 맬 허리띠도 없이 배가 고팠던 우리가족은
사뭇 먹이를 찾아 떠도는 도둑고양이의 바로 그것이었다.
양쪽 눈이 마주 붙도록 추웠던 어느 날로 기억된다.
마침 우리가 숨어 들어간 곳은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형편이 부유했던 집으로 보였으며
그 집 역시 어디론지 사정따라 떠난듯했다.
허기짐과 추위에 지쳐진 우리가족은 이미 이성이 마비되었고
마침 내나이 또래도 있었는지 기회다 싶어 이리 저리 바쁘게 뒤지시던 어머니가 재빠르게 겉옷을 챙겨 입혀주었으며 나 역시 별천지에 온 것처럼
욕심껏 고무신을 비롯하여 하나라도 더 건지기에 흥분했던 것이다.
밖은 전쟁의 공포와 합세한 기세로 어느새 눈발마져 퍼붓고 있었다.
얼마 후 어머니에 이끌리어 밖으로 나가려는데 양손가득 날된장을 움켜쥐고
장독대 모퉁이에서 배를 채우시던 아버지의 남루한 모습과 마주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동생과 둘만 남게 된 땅속 어둑한 반공 호에서
차마 먹을 것이 있어도 삼킬 수 없도록 입 언저리가 자갈밭 같던 동생이
자고 있는 줄 았는데 알고보니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된장을 밥처럼 먹는 다는 것과
동생이 어찌 운명을 그리도 처절하게 달리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무수하게 담겨있을 비참한 생각이 애석함과 범벅이 되어
여태껏 살아오면서 아직도 잘 견뎌주신 어머니에게 항상 감사하면서도
왠지 그와 같은 운명이 마치 죄나 되는 것처럼
지금도 차마 여쭈어 볼 용기가 나지 않으니 말이다.
따라서 만만찮은 세월을 거슬러 오면서 굶주림이 남겨놓은 이런 저런 현실과 접근하며
더 드러내 놓을 것이 없으리만치 벗겨진 행색이라 한들
그 어떤 것도 그렇듯 내 목전에서 가족이 치루어 낸
그이상의 것이라 수용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사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천지를 뒤진들 있겠는가.
그렇게 동생을 보낸 우리가정은 어렵사리 정착한 생활에서
다시 내 밑으로 두동생을 얻었을 수 있었다.
흔히 병에는 장사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미 청년시절부터 독학의 길에서 얻은 병이 전란을 겪으며
상할대로 깊어지면서도 가고픈 고향 땅을 못내 그리워하다
결국 나름대로 쌓아놓은 행복마져 길 잃은 낙엽처럼 흩어지는 물꼬가 되므로서
젓 먹이 동생을 비롯하여 겨울같이 남겨놓은 가족을 등지신채
기어코 나뭇잎 가지마다 울어대던 늦가을 날 세상을 뜨신 내 아버지..
다시 새겨 보고 거듭 생각해 볼수록 그렇게 팔자처럼 청상이 되어 깡 마당에 시레기 주워다가
쌀밥만 먹어도 그 날이 생일이라고 위안하시며 살아오시던
어머니의 궁색한 일생 또한 구구절절 안타까우니
한 뼘도 안되는 이 가슴에 녹아내린 사연들 세상 다하여도 어찌 애타다 버릴 수 있으리오.
이제 내 생애를 장식할 앞으로의 날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어린 가슴 동동구르며 산 넘어로 기울어가는 하늘 밑 노을자락이 얼도록
들떠벌이 나가신 부모님 기다리며 울먹이던 그때가 어버이 두분 함께하신 그늘이었으니..
- 일간지게재작 -


 

  아버지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