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슴언저리

옛일.. ( 글 / 설야 조선희 )

by 파자.다정.설야 2008. 9. 23.

.. 옛 일 ..

일터로 향하게끔 주어진 축복에 감사하듯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아침이 피어오르고 예나 다름없이 아파트단지가 펼쳐진다.

매일처럼 지나치는 곳이었건만 몇 일전 아들까지 생산한 막내딸의 기쁜 소식 때문인가 잊으려 할수록 고개를 들척거리던 30여년전의 일이 오늘따라 못견디게 떠오른다.

나는 저만치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에 눈길을 뭍는다.

생각해 보면 이세상 누구라도 행복해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 역시 그중에 한사람이었으나 단란하던 가정에 찾아온 뜻밖의 갈등으로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좌절되면서 마치 홍역을 치른 사람처럼 다시 일어서야 했다.

내리는 빗물마져도 어린 딸들의 눈가에 이슬이 되어 가슴을 조여왔고 삶의 이정표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존심의 가냘픈 고리마져 힘을 잃게 되므로서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나는 마침내 막내 딸이 5세 되던 그해 초봄부터 들떠벌이 행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 생각되어 농촌고을을 주로 다녔는데 그 중의 한곳이 바로 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이전의 장소인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머물도록 사연을 간직하게된 그 동네 어귀에서 한참거리를 두고 초가집이 있었다.

늦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밤새 몸살을 앓느라 끌어오르던 몸이 아침이 되어도 차도가 없던 막내를 위하여 어버이라면 하루쯤 쉴 만도 했겠으나 어떻튼 나가야 풀칠을 할 수 있다라는 그늘에 눈이 어두워있었으며 열기 가득한 얼굴로 혼자가 싫다고 극구 매달리는 막내와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날따라 이래저래 애가 말라서인지 반나절이 저물도록 물건마져 팔리지 않아 혹시나 하는 기대에 십리나 되어보이는 그 집까지 갔던 것이다.

그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허름했으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말이 실감되도록 사람은 그림자마져도 볼 수가 없었고

어려움을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막내가 하얗게 타들어가는 입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흙 알갱이가 자리잡은 개밥그릇 옆으로 삼각형 비닐 팩 우유 한 개가 물이 담긴 세수대야에 떠있었던 것이다.

실상 그날 내가 지고나갔던 물건은 딸이 즐겨하는 빵이었는데 그때 나는 이미 현명함과 이성을 찾는다는 것이 오히려 사치처럼 상실된 상태에서 차마 그빵엔 손을 댈 수가 없었고

결국 남의 것도 중요하다는 관념과 그집 형편으로 볼 때 분명 힘든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가슴으로 느껴지는데도 그런 판단력마져 소실된 상태에서 주인이 없다라는 이유에 자신을 설득하며 우유는 그렇게 밤지새워 아파앓던 막내의 입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잠시 후 아랫마을로부터 개 짖는 소리에 당황하면서도 먹어버린 우유 값을 빼놓는다면 아이들 학비에 오차가 있을 속 차림에 튀듯 막내와 정말로 정신없이 줄행랑을 치던 일.

모처럼 남겨진 빵을 먹으며 즐거워하던 딸들의 모습도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알고보니 시름시름 아프면서도 내색을 하면 엄마를 따라 다니지 못하겠기에 얼굴이 창백해지도록 표현마져 서두르지 못했던 막내가 그토록 어린나이로 심장폐동맥협착증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에 흐르던 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함께 눈물을 닦아주던 일..

내가 일터를 잡을 때까지 못난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던 막내가 이제 어엿한 여성으로 성장하여 건강하게 자식을 낳았으니..

또한 도움이 필요했을 형편이었던 그 집의 우유를 탐한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을 누구도 알리 없겠으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마음속 빚으로 자리함으로 인하여 관심을 가지던 터에 어느 날부터 그 집의 주변을 포함하여 땅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덩달아 반갑더니 이어 그 터에 거대한 이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이다.

차창 밖 하늘에는 드러내 놓을 수 없었던 짐을 벗으라는 듯 아까보다 더 높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2005년작 일간지게재작

  글 /